실존이란 자신을 대상화하여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근원적인 질문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주체적인 상태다. 실존주의자들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주장한다. 본질이란 한 개체를 형성하는 특성을, 실존이란 있는 그대로 드러나 있는 상태로서의 존재를 말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규정된 존재가 아니며 실존으로 본질을 결정해나가는 존재이기에, 실존은 곧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존주의에서는 인간을 주어진 유한한 틀이라는 한계 속에서 실존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본다. 유한한 틀이란, 성별과 같은 주어진 조건, 역설이라는 실존적 상태, 죽음 같은 존재적 한계를 일컫는다. 죽음은 불안의 원시적 원천이며, 이러한 죽음이라는 유한한 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유롭게 선택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모든 인간은 죽음, 자유, 소외, 무의미의 네 가지 실존적 조건으로부터 불안을 느끼지 않으려 방어기제를 사용하고,이것이 실존적 갈등의 내용을 만들게 된다. 인간은 실존적 불안을 지니고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로 주어진 한계 속에서 살아간다. 인간은 죽음, 자유, 소외, 무의미, 불안이라는 특성을 가진 실존적 상황에 처해 있으며, 이는 실존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핵심 주체이기도 하다.
1. 죽음
모든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인간은 하루를 살아가면서도,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다. 죽음과 생명은 동시에 존재하며, 삶이 있다는 것은 곧 죽음이 있음을 의미한다. 얄롬은 삶과 죽음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강조한다. 죽음은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 것이냐에 따라 달라질 뿐, 인간은 반드시 죽음에 이른다. 또한, 죽음은 불안의 원천이자, 정신병리의 주요 원천이다. 죽음을 통해 불안에 직면할 수 있으며, 불안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와 선택을 하는 진정한 존재가 될 수 있게 한다. 개인이 현재를 포용할 때, 정신병리나 정서적 고통 없이 죽음에 접근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인식은 인간에게 두려움을 야기할 수 있지만, 반대로 인간을 창조적 삶으로 이끌 수도 있다.
2. 자유
인간은 본래 자유로운 존재다. 우리에겐 수많은 자유가 주어지며 많은 것들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인간은 자유롭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게 된다. 인간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 속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은 자유롭도록 지어졌으며, 선택함으로써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를 형성한다. 자유는 우리의 삶, 행동하는 것과 행동하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한다.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제한적인 상황에 맞서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자유와 선택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 두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직면할 때, 즉 자신의 자유에 의해 선택하고 선택의 결과에 책임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실존적 삶을 살아갈 수 있다.
3. 소외
사람은 세상에 홀로 태어나면 홀로 죽게 된다. 인간은 함께 살아가지만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혼자다. 자신이 혼자라는 인식은 고독과 소외에 대한 불안을 불러일으키며, 소외를 느끼고 싶지 않기에 다양한 방어기제를 만들어 낸다. 얄롬은 소외를 개인 상호 간 소외, 실존적 소외라는 세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개인 상호간 소외는 다른 사람과 물리적·심리적·사회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과 관련이 있다. 개인 내 소외는 인간이 자기 자신과 분리될 때 일어난다. 이때, 자신의 욕구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합리화, 투사, 억압 등방어기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실존적 소외는 더 본질적인 소외로, 세계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은 소외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감을 방어하기 위해 소외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또한, 실존적 소외를 회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타인을 도구로 이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실존적 소외를 받아들이고 살아가거나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이를 극복하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4. 무의미
프랭클은 인간의 기본 동기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삶의 의미는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며, 인간은 이러한 특별한 의미를 발견해 가는 존재라고 보았다. 반면, 얄롬은 인간에게 궁극적 의미는 존재하지 않기에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직면하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무의미함의 경험을 통해 그 누구도 자신의 사람의 의미를 규정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무의미한 세상 속에서 의미를 발견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실존주의 심리치료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5. 불안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가 때로는 불안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불안은 선택으로 인해 발생한다.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수많은 대안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가지를 선택함으로써 반대로 선택하지 못하는 것들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인간은 불안을 느끼게 된다.
불안은 정상적 불안과 신경증적 불안으로 구분되낟. 정상적 불안은 개인이 직면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적절한 반응으로, 죽음, 책임감, 선택과 같은 실존적 딜레마에 직면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반면에 신경증적 불안은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응할 때 나타나는데, 이는 인생의 중요한 요구를 직면하지 않고 부인하고 억압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결과로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실존치료자는 정상적 불안의 제거가 아닌 신경증적 불안의 제거에 목적을 둔다.
랭은 정신분열증 경향이 있는 개인은 ‘존재론적 불안’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존재론적 불안을 겪는 사람들은 세 가지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먼저, 자기 자신의 자율성이 다른 사람에 의해 빼앗기거나 통합될 것이라는 흡입에 대한 두려움, 둘째, 자신을 둘러싼 진짜 세계에 의해 소멸 될 것이라는 파멸에 대한 두려움,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에 의해서 생기 없는 사물로 변해 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러한 불안은 참 자기를 위축되게 하여 뒤에 거짓 자기를 남겨 놓게 한다. 참 자기가 위축될수록 정신분열 증세는 더욱 심해질 수 있다. 한편 백 덜젠은 존재론적 불안을 병리적 상태와 연결 짓는 랭의 주장을 비판했다. 그녀는 존재론적 불안도 실존적 불안과 같은 개념이며,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직면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