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이 제시하는 성격이론의 핵심은 전체성이다. 인간의 성격 전체를 융은 ‘영혼(pshyche)’라고 불렀으며 이는 모든 사고, 감정, 행동, 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한다. 융에 따르면, 인간은 여러 부분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통합적 전체다. 인간은 전체성을 지니고 태어나면 분화와 통합을 반복하며 전체성을 발현해나간다. 인간이 생을 통해서 추구해야 할 것은 타고난 전체성을 되도록 최대한으로, 분화된 것을 일관성 있고 조화롭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뿔뿔이 흩어져 제먹대로 움직이며 갈등을 일으키는, 즉 여러 체계로 분화되어 분열된 성격은 건강하지 못한 성격이다. 융은 자기를 성격의 중심이자 전체로 보았다.
의식, 개인 무의식 그리고 집단 무의식
융은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면서 세 가지 수준의 마음, 즉 의식, 개인 무의식, 집단 무의식으로 구분했다. 의식은 개인이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며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해간다. 개인은 타인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고유한 존재로 성장하는데, 융은 이러한 과정을 개성화라고 지칭했다. 개성화의 목표는 개인이 가능한 한 완전하게 자신의 전체성을 인식하는 것, 즉 ‘자기 의식의 확대’에 있다. 개성화는 무의식적인 내면을 의식으로 가져옴으로써 이룰 수 있다. 의식이 증가하면 개성화도 증대된다. 이러한 의식의 중심에는 자아(ego)가 존재한다. 자아는 개인의 정체성과 자기가치감을 추구하며 자신과 타인과의 경계를 수립하여 구분하는 기능을 한다. 뿐만 아니라 자아는 의식에 대한 문지기 역할을 하며, 지각, 사고, 기억, 그리고 감정이 의식될지 여부를 판단한다. 인간은 의식의 중심에 있는 자아가 다양한 경험의 의식화를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 개성화를 이룰 수 있다.
개인 무의식(personal Unconscious)은 자아에 의해서 인정받지 못한 경험, 사고, 감정, 지각, 기억을 의미한다. 개인 무의식에 저장된 내용들은 중요하지 않거나 현재의 삶과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것일 수 있다. 또는 개인적인 심리적 갈등, 미해결된 도덕적 문제, 정서적 불쾌감을 주는 생각들과 같이 여러 가지 이유로 억압된 것일 수 있다. 이러한 개인 무의식은 꿈을 만들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개인 무의식의 고통스러운 사고, 기억, 감정들이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뭉치고 연합되어 심리적인 복합체를 이룰 수 있는데, 이를 콜플렉스(complex)라고 한다.
콤플렉스라는 용어는 다른 학자들도 사용하고 있는데, 융이 단어연상검사를 통해 발견한 심리적 구조를 지칭하기 위해 처음 사용한 것이다. 융의 콤플렉스가 다른 이론가의 콤플렉스와 구분되는 점은 원형적 핵(archetypal core)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융의 콤플렉스는 개인 무의식뿐만 아니라 집단 무의식의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아버지 콤플렉스, 어머니 콤플렉스, 구세주 콤플렉스, 순교자 콤플렉스와 같이 원형과 관련된 핵심적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콤플렉스는 개인에게 의식되지 않은 채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콤플렉스를 의식화하는 것이 심리치료의 목표가 된다.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은 융의 이론이 다른 이론들과 가장 차별화되는 개념이다. 집단 무의식은 개인 무의식과는 달리 특정한 개인의 경험과 인식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집단’이라 함은 그 내용들이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집단 무의식은 인간에게 전해 내려온 보편적인 경향성으로서 신화적 모티브의 표상을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인간은 유사한 생리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비슷한 환경적 요소를 공유하기 때문에, 개인은 세상에 대해서 보편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할 수 있는 소질들을 가지게 된다. 이처럼 개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인류 보편적인 심리적 성향과 구조가 집단 무의식이다. 집단 무의식을 구성하는 주된 내용은 본능과 원형이다. 본능은 행동을 일으키는 충동을 의미하며, 원형은 경험을 지각하고 구성하는 방식을 뜻한다.
2. 원형의 5가지 유형
원형(archetypes)은 내용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형태만 가지고 있다. 원형은 어떤 유형의 지각과 행동의 가능성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원형들은 집단 무의식 내에서 서로 별개의 구조를 이루고 있지만 결합을 하기도 한다. 모든 원형들이 여러 가지로 결합되어 작용하기 때문에 개인의 성격이 각기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원형은 콤플렉스의 핵심을 이루며 원형이 중심이 되어 관련 있는 경험들을 끌어당겨 콤플렉스를 형성한다. 원형은 무수하게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는 반면, 그 내용을 이루는 주요한 원형적 심상(예: 영웅, 순교자, 어머니, 악마)은 많지 않다. 이러한 심상을 중심으로 경험이 계속 추가되어 충분한 힘을 얻게 되면 콤플렉스는 의식에 침입할 수 있게 된다. 원형이 의식에 떠올라 행동으로 표현되는 경우는 그 원형이 잘 발달한 콤플렉스의 중심이 되었을 때 뿐이다.
융은 다양한 원형 중에서 우리의 성격과 행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5개의 원형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것은 페르소나, 아니마, 아니무스, 그림자, 그리고 자기이다.
페르소나(persona)는 라틴어로 ‘가면’이라는 뜻이며 개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을 뜻한다. 개인을 부모로서, 친구로서 직장인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하게 된다. 개인이 이러한 역할들을 수행하는 방식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을 원하는지에 따라서 달라진다. 페르소나는 사람이 특정한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 사고, 행동을 조절해야 하는 것을 배우는 데 유용하다. 그러나 페르소나를 너무 중요하게 여기면, 개인은 진정한 자신으로부터 유리되어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삶을 살게 될 뿐만 아니라 순수한 감정을 경험하기가 어려워진다.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는 자신과 반대되는 성의 특성을 의미한다. 페르소나가 외부로 드러난 모습이라면,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무의식 속에 지니고 있는 이성의 속성을 뜻한다. 아니마는 남성에게 있어서 다정함이나 감성적 정서와 같은 여성적인 부분을 나타낸다. 아니무스는 여성에게 있어서 논리나 합리성과 같은 특징을 지니는 남성적인 부분을 말한다. 남성과 여성이 모두 반대 성에 해당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남성과 여성이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 모두를 분비한다는 생물학적인 사실로도 지지된다. 융은 조화로운 성격을 지닐 수 있도록 남성은 아니마를, 여성은 아니무스를 무의식 속에서 이끌어내 표현해야 한다고 믿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성숙하고 틀에 박힌 남성상이나 여성상에 갇힐 위험이 있다고 했다.
그림자(shadow)는 개인이 자신의 성격이라고 의식적으로 인식하는 것과 반대되는 특성을 뜻한다. ‘등잔불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듯이, 그림자는 자아의 어두운 부분, 즉 의식되지 않는 자아의 분신을 의미한다. 그림자는 개인이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성적이고 동물적이며 공격적인 충동을 포함하고 있다. 그림자는 어떤 면에서 프로이트가 말하는 원초아와 유사하다. 그림자는 잠재적으로 가장 위험하고 강력한 콤플렉스로서 자아가 이를 받아들여 화목하게 영혼 속에 편입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가 심리적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그림자를 적절히 표현하는 것은 창조력, 활력,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림자를 과도하게 억압하면, 개인은 자유로운 표현이 억제되어 진정한 자신으로부터 괴리될 뿐만 아니라 불안과 긴장 상태에 빠져들 수 있다. 그러나 개인들에게 있어서 치료의 목표는 그들의 그림자를 의식으로 가져와 인식하고 표현하도록 돕는 것이다.
자기(Self)는 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한 성격 전체의 중심이다. 자기는 성격을 구성하고 통합하는 에너지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 자아가 의식의 중심이라면, 자기는 성격 전체의 중심이면서 동시에 역설적으로 성격 전체를 포함하고 있다. 개성화가 일어나지 않은 미숙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자기가 무의식의 중심에 묻혀 있어서 다른 원형과 콤플렉스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개인이 성숙해지고 개성화됨에 따라 자아와 자기의 관계가 밀착되어 모든 성격 구조에 대한 의식이 확대된다. 융은 자기의 실현이 인간 삶에 있어서의 궁극적 목표라고 보았다. 개인이 자신의 성격 기능을 완전히 발현할 때, 자기 원형에 접촉하여 무의식의 내용들을 의식으로 더 많이 가져올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의식적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꿈의 의미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형은 내용을 지니지 않고 단지 형태만을 지닌 심리적 반응양식이다. 그러한 원형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 바로 상징(symbols)이다. 원형은 꿈, 환상, 환영, 신화, 동화, 예술 등에서 나타나는 상징들을 통해서 표현될 수 있다. 융은 신화, 연금술,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중요한 원형들을 나타내는 상징들을 발견하였다. 상징은 정신의 표현이며, 인간성의 모든 면이 투영되어 있다. 이러한 상징 의 구체적인 심상으로는 영웅, 순교자, 전사, 위대한 어머니, 현명한 노인, 악마, 사기꾼, 고통받는 소녀 등이 있다 융이 발견한 상징들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자기를 상징하는 만다라이다.
융이 제시한 개념들은 전체성을 지닌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적인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들은 공간적으로 실체화하기 어려운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의식, 개인 무의식, 집단 무의식의 세 가지 층으로 구분될 수 있다. 자아는 의식의 중심을 이루며, 자아에 의해 억압된 개인의 경험들이 바로 그 아래 개인 무의식에 그림자로 존재한다. 페르소나는 자아가 사회적 장면에서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좀 더 깊은 집단 무의식에 존재하며, 자기는 마음의 중심이자 마음 전체를 포함한다.